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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에서 온 편지 3. 이방인, 여자, 예민러

황달수

오랜만이야. 그 동안 별 일 없었지? 언제나 무탈한 네가 되길 바래. 해가 짧아지니까 말보다 카톡보다 긴 글을 쓰고 싶어서 또 편지를 보내. 오늘은 어쩌다가 목포에서 작은 술집을 열게 되었는지 얘기해 볼게. 사실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천천히 내 가게를 준비하려고 했어. 서울보다는 임대료가 당연히 저렴할 거라는 생각에 한 6개월 정도 일하면 사업 자금을 모을 수 있을 줄 알았지. 참 멍청할 정도로 순진한 생각이었지만. 아르바이트 구직 사이트가 원하는 인재가 되기에 내 나이는 너무 많고 내 경력은 너무 다채로웠어. 일자리도 별로 없었어. 시급도 넉넉하지 않고. 왜 다들 서울에 일하러 오는지 그제서야 알게 된거야. 서울은 인구가 많은 만...

답지 않은 사람들 시즌 2 9. '기혼자' 답지 않은 마음

유의미

느티나무가 우거진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마음’을 만났다. 그는 감기에 걸려 목이 잠겼다며 유자차를 주문했다. 마음은 잘 다듬어진 문장과 단호한 말투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자칫 딱딱한 대화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인터뷰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다. 마음은 때때로 일상에서 잘 사용되지 않는 독특한 어휘를 선택하고, 질문자가 생각지 못한 방향의 대답을 하기도 해서 대화가 계속 재미있고 긴장감이 넘쳤다. Q. 오늘의 사소한 잘한 일이 있나요? 최근에 생리 기간이었고 날씨도 추워서 침대 밖으로 나오기가 힘들었어요. 근데 오늘은 샤워하고, 머리를 잘 말리고, 분칠도 하고, 정말 날씨에 딱 맞는 따뜻한 옷을 입고, 늦지 않게 잘 나왔어...

목포에서 온 편지 4. 지치고 힘들어도

황달수

안녕, 어제 목포에는 큰 비가 내렸어. 날씨가 추워져서 눈이 올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는 그 정도의 추위는 아닌가봐. 좁디 좁은 한반도지만 아무래도 남쪽은 날씨가 비교적 따뜻한 느낌이야. 저번에는 석연치 않게 목포시 도시재생 사업에 합격한 이야기까지 했지? 합격만 하면 탄탄대로일거라는 생각은 대체 누가 우리에게 심어주는걸까. 대학교에 합격하면 여드름도 사라지고 로맨스 드라마 주인공 처럼 근사한 애인도 생기고 대기업에도 취직할 줄 알았는데 전부 다 사실이 아니었잖아. 여드름은 아직도 나고 있고 애인은 로맨스 드라마나 영화 같지 않았고 대기업 취직을 위해서는 각종 스펙과 경험과 집안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걸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답지 않은 사람들 시즌 2 2. '아무나'답지 않은 키키

유의미

마카롱을 좀 샀는데 드실래요? 키키가 들어오자마자 알록달록 예쁜 마카롱을 건넸다. 힙한 가로수길의 카페에서 마카롱을 한입 베어 문 채 대화하고 있으니 키키의 차분한 성격이 더 잘 드러났다. 배경 음악으로 끝없이 흘러나오던 노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속도로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가만히 질문을 끝까지 듣고 나서, 천천히 하고 싶은 말을 시작했다.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하고 있지만 키키의 말에는 중심이 있다. 이것저것 고민을 많이 해봐서, 스스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아는 것처럼 느껴진다. Q. 어제는 뭐 하셨나요? A. 운동하고 공부하고 넷플릭스 봤어요. 요즘 PT를 받고 있어서 운동을 열심히 해요! 공부는 취업을 준비하고...

답지 않은 사람들 시즌 2 5. ‘대학생’답지 않은 자몽

유의미

인터뷰에서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내용을 미리 준비한다고 달라질 게 없는 것 같더라고요. 원래 말을 길게 하는 편이 아니라서 그냥 최대한 길게 말하자고 다짐하고 왔어요. 서초구의 한 복합문화공간 안에 위치한 활기찬 분위기의 카페에서 자몽을 만났다. 자몽은 커피를 잘 못 마시지만 새로운 카페에 가보는 걸 좋아한다며, 도착한 카페에서 차가 들어간 음료를 주문했다. 이내 인터뷰가 시작되었고 자몽은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한 태도로 열심히 답해주었다. 떠오르는 대로 답하기보다는 질문을 듣고 언제나 잠시 생각을 정리한 다음 비로소 신중하게 입을 뗐다. Q. 어제의 사소한 잘한 일이 있나요? A. 어제는 강남역에서 친구를 만나고 왔어...

목포에서 온 편지 6. 혼자는 좋다

황달수

안녕! 올 해 겨울은 유난히 춥지 않아. 지구 기후 위기 때문일까? 정말 인간으로 살면서 많은 편리함과 죄책감들을 지고 살아야 하는 2020년이야. 그래도 감기는 조심해야 해! 감기에 걸리면 일상이 마비가 되잖아. 혼자 사는 사람에게 아픈 일도 오롯이 혼자 견뎌야 하는 ‘일' 임을 이제는 알게 되었어. 부디 혼자 살고 있는 모든 여자들이 건강하고 무탈하길. 베타라는 물고기를 알고 있니? 관상용으로 많이들 기르고 접하게 되는 열대어야. 수컷 베타는 지느러미가 길고 몸 색깔이 알록달록해서 상품성이 좋지. 그래서 마트나 수족관에서 종종 보게 되는 건 대부분 수컷 베타라고 해. 수컷 베타는 투어(鬪魚)이기 때문에 한 마리 이상 키울 수가...

답지 않은 사람들 시즌 2 6. ‘사회초년생’답지 않은 따금

유의미

어느 주말에 구로동의 한 카페에서 따금을 만났다. 실내에 야자수가 우거진 독특한 인테리어가 기분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카페였다. 따금은 페미니스트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안경을 쓰고 운동화를 신은 편한 차림이었다. 그는 질문마다 의도를 섬세하게 되물었다. 대답하기 전에 매번 추임새처럼 ‘이런 말 해도 되나?’ 하며 망설이는 시늉을 하지만, 결국 할 말은 다 하고 마는 점이 재미있었다. 따금에게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이따금 변화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제가 ‘따금’이잖아요. 대학교 때 교수님이 ‘너는 학교를 이따금씩 나오는구나.’ 하셔서 같이 웃다가, 갑자기 그 말이 마음에 들어서 ‘어, 따금? 괜찮은데?’하며...

목포에서 온 편지 5. 기념일은 무엇을 기념해야 마땅한가

황달수

멀게만 느껴졌던 2020년이 현실로 다가왔어. 생각보다 그렇게 대단하지도 않은 평범한 날들이지만, 같은 숫자가 두 번 반복된다고 또 이게 재밌기도 해. 넌 새해를 어떻게 맞이했어? 나는 말야, 친한 친구들과 함께 유자차와 와인을 가져가 유달산에서 카운트다운을 외친 후 매 년 하는 불꽃놀이를 관람하며 맞이했어! 올해는 바라는일들이 다 잘 되기를. 저번에는 우여곡절 끝에 가게를 오픈한 이야기를 했었지? 약 10평이 되지 않는 크기의 가게이지만 꽤 준비할 서류도, 돈도, 물건들도 많이 필요했기 때문에 진이 다 빠졌어. 발렌타인 데이라는 대기업의 상술로 가득 찬 날 가게를 엉겁결에 오픈했기에 그 날은나에겐 ‘내가 해낸 날'이야. 발렌타인...

답지 않은 사람들 시즌 2 4. ‘여자’답지 않은 스누피

유의미

커피 볶는 향이 듬뿍 나는 홍대의 한 카페에서 스누피를 만났다. 자주 오는 카페라며 들어서자마자 신메뉴를 주문했다. 스누피는 밝은 은빛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우드톤과 무채색으로 꾸며진 차분한 분위기의 카페에서 혼자만 빛나고 있는 것 같았다. 정확한 답을 하려고 하는지, 답을 하기 전에 질문을 꼭 한 번 더 되풀이하고는 말을 시작했다. Q. 어제는 뭐 하셨나요? 어제요? 월요일이었죠? <킬링 이브>를 보다가 일찍 잤어요. 어제 정주행을 시작했는데 정말 재밌더라고요! 고전적인 사이코패스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그런 캐릭터가 여자니까 너무 좋아요. 사실 어제는 컨디션이 안 좋아서 일찍 퇴근하고 쉬고 싶었는데 월요일 몫의 일을...

답지 않은 사람들 시즌 2 7. '아싸'답지 않은 밀코

유의미

하고 싶은 게 뭔지 몰라서 일단 돈을 벌고 있어요. 근데 그거 아세요? 월급에도 중독이 돼요. 케이크가 맛있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밀코를 만났다. 유난히 달콤한 디저트가 필요한 날이라며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레드벨벳 케이크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흰 피부에 잘 어울리는 옅은 갈색 머리칼과 살짝 찡그린 듯한 차가운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내내 조금은 퉁명스러운 듯한 말투로 대화를 이어가는가 싶었지만, 긴장이 조금 풀어진 다음에는 꽤 자주 웃는 편이었다. 차가운 이미지가 신경 쓰일 때도 있다는 밀코지만, 웃을 때면 눈이 크게 휘어지고 입이 활짝 열려서 평소의 표정과 확연히 다르게 얼굴 전체가 열린다는 느낌을 준다. Q. 오늘의 사소...

답지 않은 사람들 시즌 2 8. '통념'답지 않은 하양

유의미

티라미수가 맛있는 강남의 카페에서 하양을 만났다. 강남 한복판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조용했고, 내내 차분한 음악만 흘러나오던 곳이었다. 하양은 호탕한 웃음소리를 지녔는데 그의 작은 체구에 의외로 잘 어울렸다. 어떤 질문을 하든 미리 준비라도 한 것처럼 거침없이 대답하고, 적극적인 반응과 열과 성을 다하는 답변에 인터뷰 내내 깔깔 웃을 정도였지만, 닉네임을 묻자 갑자기 말문이 막혀 ‘모르겠어요!’를 외쳤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며 생각해낸 이름이 ‘하양’이었다. 복슬복슬 따뜻해 보이는 하얀 플리스 재킷을 입고 있어서 잘 어울렸다. Q. 하양은 어떤 사람인가요? 저는 단순한 사람이에요. 최근에 누가 나한테 단순하다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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